페이팔 만들어 20대에 억만장자로… “게으름은 죄” 창업 또 창업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50]핀테크 시대를 활짝 연 우크라이나 출신 레브친

실리콘벨리에서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의 명성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개발자가 있다. 바로 핀테크 시대를 연 맥스 레브친이다. 동시에 그는 ‘페이팔 마피아’의 탄생 주역이기도 하다.
레브친은 1975년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나자 물리학자인 그의 어머니는 사고의 심각성을 알고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레브친은 일리노이 공대에서 컴퓨터 보안을 전공하던 시절에 이미 3번 창업 경험을 쌓았다. 이 가운데 자동화 마케팅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렸다.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기보다는 더 큰 무대인 실리콘밸리에 가서 제대로 창업해보고 싶었다.
레브친은 1998년 스탠퍼드 대학 여름 학기에 헤지펀드 매니저 피터 틸의 강의를 들었다. 신출내기 강사라 학생은 겨우 6명이었다. 레브친은 틸과 점심을 먹으며 본인이 창업할 소형 기기에 암호화된 정보를 저장하는 보안 기술 아이디어를 설명했고, 틸은 투자 의사를 밝혀 공동 창업을 했다. 레브친이 ‘개발’을 맡고 28만달러를 투자한 틸이 ‘경영’을 맡았다. 그들은 6번 실패 끝에 정보를 암호화해서 보낼 수 있다면 돈도 암호화해서 송금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 아이디어가 페이팔의 전신이 되어 세상을 바꾸게 된다. 이로써 이메일 주소만 알면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컨피니티’를 탄생시켰다.
<체르노빌 사고 후 우크라서 미국 이민>
‘컨피니티’는 편리하고 안전한 온라인 계좌를 제공해 개도국 사람들도 인플레이션에 휘둘리는 자국 통화 이외에 선진국 통화를 쉽게 바꾸어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디지털 화폐를 만든다는 아이디어에 흥분했다. 게다가 컨피니티의 송금 방식이 혁신적이었다. 한 번만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언제든지 이메일을 이용해 송금할 수 있어, 개인 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 환율도 알아서 해결해준다. 이른바 금융과 IT의 결합인 ‘핀테크’의 본격 시작이었다.
레브친과 틸이 회사를 키우면서 사람들을 모으는 기준은 하나였다. 같이 즐겁게 일하며 나보다 우리를 중시하는 ‘단결력’을 가장 중시했다. 이를 위해 대학 시절 친구들을 페이팔에 합류시켰다. 그들은 지금도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창업자의 성향을 최우선적으로 본다.
그 뒤 빠르게 경쟁사들이 나타났다. 이베이는 ‘빌포인트’를 내놓았고 그 외에도 여러 서비스가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일론 머스크의 ‘X.com’이었는데 송금 방식이 ‘컨피니티’와 똑같았다. 두 회사는 치열한 경쟁 끝에 2000년 3월 50대50 합병을 단행해 ‘페이팔’이 탄생했다. 당시 창업 주역 15명 중 9명이 유대인이었다. ‘페이팔’은 창업 초기 유대인 케빈 하츠에게 엔젤 투자를 받았다. 그 뒤 골드만삭스 등 투자자들에게 1억달러 투자를 끌어냈다. 이후 페이팔이 이베이에 서비스를 제공하자 입점한 사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때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온라인 송금 업계에 큰 사건이 터진다. 해커들이 허위 정보로 돈을 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해커들 공격으로 힘들기는 페이팔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에 1000만달러를 손해 보기도 했다. 페이팔의 최고기술이사 레브친에게는 절체절명 위기였다. 그는 인턴이던 가우스벡과 해커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기계나 컴퓨터가 아닌 사람 눈으로만 판독이 가능한 숫자판 형태의 테스트다. 그리고 컴퓨터가 스스로 거짓 정보를 식별해 내는 설루션도 발명했다. 이 공로로 MIT는 올해의 발명가로 막스 레브친을 선정했다.
이후 회사는 빠르게 성장해 직원이 220명까지 늘어났다. 2000년 들어 IT 거품 붕괴로 주식시장이 무너졌음에도 페이팔은 2002년 2월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당시 이베이의 맥 휘트먼은 통 큰 유대인답게 페이팔을 15억달러에 사들였다.

이렇게 페이팔 매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젊은 창업가들은 편안히 지내는 길을 택하기보다 다시 새로운 창업에 뛰어들었다. 레브친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괴로웠던 시기가 페이팔을 매각해 거금을 손에 쥔 뒤라고 했다. 처음에는 내면을 찾는 생활을 하자며 1년간 멋진 해변에서 여자 친구와 놀기도 했다. 하지만 금방 시들해졌다. 놀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게으름은 죄’라는 유대인 고유의 죄의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 회사에 취직했다가 다시 창업의 길로 나섰다.
<다 준비하면 늦는다, 일단 시작하라>
페이팔 창업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한 형제처럼 서로 도왔다. 페이팔 출신들은 바쁜 틈을 쪼개어 일주일에 한 번꼴로 모여 서로의 아이디어를 놓고 질문과 토론을 거듭했다. 그들은 아이디어가 좋으면 즉석에서 투자를 결정해 지원했다. 이렇듯 페이팔 문화의 특징은 속전속결의 ‘기민함’에 있었다. 일단 먼저 추진하고, 아니다 싶으면 시장에 민첩하게 대응함으로써 결말을 보았다. 완벽하게 갖추고 나서 시작하면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끈끈한 조직력을 보이자 2007년 11월 경제 전문지 ‘포천’은 페이팔 창업 멤버들을 조명하면서 이들을 ‘페이팔 마피아’라고 불렀다. 서로 도와 밀어주고 당겨주는 끈끈한 결속력이 마치 마피아 같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세운 회사 가운데 10억달러 이상 가치를 가진 유니콘이 무려 8곳이나 된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스페이스X’, 스티브 첸, 채드 헐리, 자웨드 카림의 ‘유튜브’, 리드 호프먼의 ‘링크드인’, 제러미 스토플먼, 러셀 시먼스의 ‘옐프’, 데이비드오 색스의 ‘야머’, 피터 틸의 ‘팰런티어’, 막스 레브친의 ‘어펌’이 그것이다. 그간 페이팔 마피아가 투자한 기업이 646곳이 넘는다.
<코멘트>
지난 7월 기준으로 미국 주요 기업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12월 현재 애플 -22%, 구글 -35%, 아마존 -47%, 마이크로소프트 -26%, 메타 -65% 등. 지옥이 따로 없다. 혹자는 현재의 상황이 지난 1970년 미국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한다. 성장주의 거품이 꺼지고, 가치주에 투자할 시기라고 한다. 걱정과 불안은 시장에 가득하다. 반등의 조짐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국제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 우리 정치 또한 여소야대로 만만치 않은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레브친의 행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으름은 죄'라고 생각하는 기업인. 편안한 삶을 멀리하고 창업에 창업을 거듭하는 존재. 법구경에도 게으른 자는 죽어라고 했다. 편안한 가운데서도 게으르지 않았다.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우리도 레브친과 같은 삶을 추구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단, 송금 시스템의 혁신인 핀테크가 개도국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블록체인이 가진 장점도 많지만, 해킹이라는 단점이 아직은 너무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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