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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행동으로 보여준 사례에 불과하다.
세계 일부 국가에서 공공장소 히잡 착용 금지를 법안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권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부 이슬람 국가의 극우적인 성향이 반이슬람국가와 무력으로 맞서는 현상이 히잡 착용 금지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무력 충돌의 결과가 기독교 문화권 국가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을 종용하는 원인이다. 하지만 히잡을 착용한다고 해서 모든 이슬람 문화권 사람을 악인으로 낙인찍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쓴다고해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히잡 착용은 남을 남을 해치려는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착용을착용하고지 않고는 개인의 자유와 결부된 문제일 뿐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혹자는 히잡이 여성 인권을 무시하는 이슬람의 나쁜 문화이기에 부정하려고 든다. 여성 인권이 급격하게 신장된신장한에서 서구권 여성은 이슬람 문화권 여성의 복장 자유를 위해 히잡 착용 금지 시위를 하는 것 같지만, 이런 행위가 오히려 이슬람 여성 인권을 더욱더 나쁜 쪽으로 몰고가몰고 가는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첫째, 야구 경기장에서 모자를 쓰고 있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둘째, 스님이 법복을 입고 다닌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셋째, 벗고 다니지만 않는다면 경범죄 처벌과는 무관하다.
히잡을 단순하게 여성 탄압의 도구로 볼 필요는 없다. 이슬람 문화권을 벗어난 여성은 충분히 스스로 히잡을 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화권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히잡 착용이 오히려 여성을 보호하는 수단으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히잡을 쓰는 것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표현한 것으로,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는 국가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개인 표현의 자유에 불과하다고 본다.
단순하게 히잡 착용 금지를 입법한다고 해서, 히잡 착용이 품고 있는 부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의도와 동기는 좋지만 결과가 나좋지만, 결과가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히잡 착용이라는 단순한 형태의 자유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종교간 소통을 통종교 간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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